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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같은 ‘100점 감독’ 꿈꿉니다”

기사승인 2015.06.30  21: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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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현호 중동고 감독, ‘고재욱 아들’서 ‘우승 제조기’로

   
▲ ‘고재욱 감독 아들’에서 ‘중동고 우승 제조기’로 발돋움한 고현호 감독.

“처음 축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힘든 직업이란 걸 알고 계셨으니까요. 그래도 계속 조르자 ‘대신 중간에 그만둔다는 소린 마라’고 하시면서 허락해 주셨죠.”

고현호(35) 중동고 감독의 인생은 축구와 함께 시작됐다. 그가 떠올리는 인생의 첫 기억에 축구공이 있고 선수들이 있다. 고 감독의 아버지는 1990년대 한국 축구 대표 명장으로 K리그를 주름잡은 고재욱(64) 현 여자축구연맹 고문. 1980년생인 고현호 감독은 “35년째 ‘고재욱 감독 아들’로 살고 있다”며 웃었다.

고재욱 감독은 1980년대 중반부터 럭키금성(현 FC서울)서 트레이너, 코치, 감독 생활을 한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프로선수들과 교류했다. 그는 “당시 ‘삼촌, 삼촌’하며 따라다녔던 분들이 피아퐁 조민국 정해성 조영증 한문배 최순호 선생님들”이라고 떠올렸다. 프로선수로서 화려한 삶을 사는 그들을 보고 자란 11살 소년 고현호는 어렵게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내고 축구화를 신었다.

이후 중동중-중동고-고려대를 거친 그는 전북 현대에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았다. 1년 6개월 간 공식 경기는 단 한 번도 뛰지 못한 채 부상까지 당하자 이른 은퇴를 결정했다. 짐을 싸들고 온 아들은 “일찍부터 공부해 지도자로 성공하겠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잘 선택했다”며 어깨를 두드렸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며 인근 태성중‧고에서 틈틈이 지도자 수업을 받은 그는 소집해제 후 호주 존 폴 칼리지에서 착실히 공부했다.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와 중동고 코치로 2년 간 경험을 쌓은 뒤 서른한 살 나이로 모교팀 지휘봉을 잡았다. 준비된 지도자였던 그는 ‘초보티’도 내지 않고 승승장구 했다. 부임 첫 해 고등리그 권역 우승과 청룡기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듬해인 2012년 금강대기 정상에 오르며 28년 만의 전국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아버지가 중동고 감독으로 있던 시기에도 이루지 못한 큰일을 아들이 해냈다. 고재욱 감독은 고현호 감독을 꼭 끌어안으며 “고생했다”는 말을 전했다. ‘고재욱 감독의 아들’이 아닌 ‘감독 고현호’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사실 선수 생활을 할 때만 해도 아버지를 많이 어려워했습니다. 저는 숙소 생활을 했고 아버지는 지방 프로팀 감독을 하시면서 교류도 그리 많지 않았죠. 하지만 지도자가 된 뒤로는 감독으로서 고충을 나누는 사이가 됐습니다. 지금도 어린 선수들의 심리적인 면을 보듬는 것에 대한 정보를 많이 듣고 있어요.”

중동고는 고현호 감독 부임 후 매년 하나 이상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탄탄한 조직력 위에 선수들의 개성을 더하는 틀에 박히지 않는 축구로 중동고의 옛 명성을 되찾았다. 올해도 시즌 첫 대회 부산MBC배에서 4강에 올랐다. 감독 부임 후 첫 제자인 최규백(대구대) 김정현(오이타 트리니타) 김성현(성균관대) 등도 각자의 무대에서 빛나는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감독으로서 자신의 점수로 55점을 줬다. 성적은 어느 정도 내고 있지만 전체적인 팀 운영과 학부모들과의 관계에서는 미흡한 면이 많다는 것. 그러면서 아버지 고재욱 감독은 ‘100점 감독’이라며 자신의 롤 모델이라고 했다.

“솔직히 프로팀 감독으로 계실 땐 우승, 준우승을 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선수들이 있으니 당연히 그만큼의 성적을 내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관동대 감독으로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버지께서 부임할 때만 해도 관동대는 해체를 앞둔 팀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팀을 이끌고 1‧2학년 대회 준우승, 전국대회 4강 성과를 내시더군요. 프로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2010년 김오규 강원FC)도 배출하셨고요.”

고 감독은 부족한 ‘45점’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그는 올시즌 고등리그 왕중왕전 준결승을 앞두고 있는 언남고를 예로 들며 “중동고를 프로 산하팀들도 버거워 하는 팀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또 “최근 중동중은 최강팀으로 불리는데 중동고는 그 정도는 아니다”라며 “중동고도 모두가 오고 싶어 하는 최강팀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고 감독 부임 후 좋은 성적을 낸 덕분인지 그가 점찍은 중동중 졸업반 선수 5명 모두가 내년 프로 산하가 아닌 중동고 진학을 약속했다.

더 큰 목표도 있다. 고 감독은 중동고 3학년 주장이던 1998년 전국대회 MVP 자격으로 프랑스월드컵 기수로 선정돼 월드컵 무대를 경험했다. 일본-자메이카전 기수로 그라운드를 밟던 그 순간의 떨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선수로서 월드컵 무대를 다시 밟겠다는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어요. 하지만 언젠가 지도자로서 월드컵을 경험하겠다는 목표를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아직 젊으니까 아버지 같은 ‘100점 감독’이 되는 것도, 월드컵 사령탑이 되는 것도 현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박재림 기자 greengreengrass@footballjournal.co.kr

<저작권자 © 2018 축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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