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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전, 젊은 지도자 앗아간 ‘벤치 스트레스’

기사승인 2017.09.12  09: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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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저널=이민성의 축구 타임머신] 1999년 9월 12일. 축구계에 비보가 전해졌다. 불과 4일 전까지 벤치를 지킨 부산 대우 신윤기 감독대행이 병상에서 눈을 감았다. 42세의 유망한 지도자는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신 감독은 8일 울산전을 마치고 심한 피로를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합병증으로 뇌출혈이 일어나 뇌사 상태에 빠졌다. 부산은 11일 안양전에서 장외룡 코치가 지휘봉을 잡았고, 신 감독은 다시 사령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벤치 스트레스’가 사망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부산은 플레이오프 진출 마지막 자리인 4위를 목표로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신 감독은 쓰러지기 전까지 3연패를 당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피 말리는 승부, 극도의 긴장감이 결국 젊은 지도자를 앗아갔다.

   
▲ 신윤기 감독이 떠난 뒤 열린 첫 홈경기에서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묵념을 하고 있는 안정환(맨 왼쪽)과 대우 선수들. / 사진출처: 한국프로축구 30년사

영남상고를 졸업한 신 감독은 서울시청에서 활약하다 프로 원년인 1983년 유공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서울시청 코치, 한일생명 감독을 맡았고 1999년 1월 부산 스카우트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성실한 지도자로 정평이 나 있었다. 5월부터는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으로도 일했다. 꾸준히 장애인 단체를 후원하는 등 선행도 아끼지 않은 따뜻한 축구인이었다. 

신 감독이 떠난 뒤 첫 홈경기(부천전)는 추모 경기로 열렸다. 이날 전광판에는 신 감독의 생전 모습이 방영됐고 구단 임직원과 선수, 팬 모두 검정색 리본을 달았다.

부산은 시즌 막판 힘을 내며 턱걸이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후 전남과 부천을 연파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하지만 신 감독의 영전에 우승컵을 바치지는 못했다. 수원과 챔피언결정전 1‧2차전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해 연장에 돌입했지만 수원 샤샤의 ‘신의 손’ 사건으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해 MVP를 받은 부산 안정환은 시상식에서 “돌아가신 신윤기 감독님께 우승 트로피를 안겨 드리고 싶었는데 아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민성 기자 footballee@footballjournal.co.kr

<저작권자 © 2017 축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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