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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눈물 흘리며 축구화 벗은 유상철

기사승인 2018.03.12  00: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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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저널=이민성의 축구 타임머신] 12년 전 K리그 개막전에서 ‘유비’ 유상철(당시 35세)이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2006년 3월 12일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울산 현대와 광주 상무의 시즌 첫 경기 하프타임에 울산 유상철의 은퇴식이 열렸다. 유상철은 구단, 선수단, 서포터스에게 감사패를 받았고 자신의 등번호인 6번을 후배 박동혁에게 전달했다. 

유상철은 이날 선발 출전해 11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빈 뒤 교체로 물러났다. 142번째 K리그 경기가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가 됐다. 경기장 곳곳에는 ‘팔방미인’, ‘원조 멀티 플레이어’ 등 그를 대표하는 수식어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유상철은 감격에 겨운 듯 끝내 눈물을 흘렸다.

응암초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유상철은 경신중‧고와 건국대를 거쳐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전에서 동점골을 넣었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첫 경기 폴란드전 추가골을 터뜨리는 등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태극마크를 달고 123경기를 뛰며 18골을 넣었다.

   
▲ 전남 드래곤즈 유상철 감독. / 사진제공: 프로축구연맹

1994년 프로로 데뷔했다. 일본에서 뛴 시절을 빼놓고는 줄곧 울산에서만 활약했다. 1998년에는 15골을 터뜨리며 K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도 3차례나 선정됐다. 1994년에는 수비수, 1998년에는 미드필더, 2002년에는 공격수로 뽑혔다. 지금까지도 멀티 플레이어의 대명사로 불린다.

유상철은 2006년 독일월드컵 출전을 소망했다. 하지만 다친 부위가 낫지 않아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시원한 것보다 섭섭한 마음이 앞선다. 생각보다 빨리 은퇴해 아쉽다”며 “프로에서는 울산이 우승한 1996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표팀에서는 2002년 월드컵을 잊을 수 없다”고 돌아봤다.

3년 뒤인 2009년 춘천기계공고 감독이 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2011년 7월에는 프로팀 대전 시티즌 사령탑에 앉았다. 1년 반 동안 대전을 지휘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2014년부터 다시 아마추어 무대에서 실력을 닦았다. 울산대를 이끌고 전국체전과 추계대학연맹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다시 K리그로 돌아왔다. 올시즌을 앞두고 K리그1(클래식) 전남 드래곤즈 지휘봉을 잡았다. 현재까지 1승 1패를 기록한 그는 “팬들에게 ‘다음에 전남 경기 또 보러 가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민성 기자 footballee@footballjournal.co.kr

<저작권자 © 2018 축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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