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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축구] 콤비였던 김호-조광래의 ‘엇갈린 명암’

기사승인 2019.03.14  16: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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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저널 최승진 기자] 김호(75)와 조광래(65)는 선수 시절 ‘머리로 공을 찬다’는 찬사를 받았다. 1966~1972년 국가대표 수비수로 활약한 김호는 대인 방어는 물론이고 상대의 공격 흐름을 끊는 플레이로 유명했다. 1977년부터 10년간 국가대표를 지낸 미드필더 조광래는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처럼 정교한 패스와 능란한 경기 조율 능력을 과시했다. 경남이 낳은 대표적 축구인인 둘은 고향도 지척지간인 통영(김호)과 진주(조광래)다.

1992년 7월, 94 미국월드컵 감독에 선임된 김호가 코치로 부른 지도자가 조광래다. 호흡을 맞춘 시간은 짧았다. 몇 달 뒤 조광래가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 지휘봉을 잡으며 대표팀을 떠났다. 둘은 3년 뒤 다시 이어졌다. 수원 삼성 창단 감독이 된 김호가 다시 조광래를 코치로 불렀다. 이미 프로팀 감독까지 지낸 후배는 믿고 따르는 선배의 부름에 주저 없이 코치로 갔다. 두 지도자는 ‘실과 바늘’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 지난해 홈경기에 앞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는 김호 전 대전 대표. / 사진제공=프로축구연맹

두 시즌 간 한솥밥을 먹은 둘은 1998년 초 헤어졌다. 조광래가 코치에서 물러나 유럽으로 축구 연수를 갔다. 감독과의 불화로 사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서로 똑똑한 사람들이니 어찌 충돌이 없었겠느냐고 수군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조광래는 1999년 안양 LG(현 FC서울) 사령탑에 오르며 현장에 복귀했다. 둘은 동반자에서 적수가 됐다. 공교롭게도 그해 서정원이 프랑스에서 돌아오며 친정팀 안양이 아닌 수원을 택하자 두 팀의 라이벌 구도가 더 굳어졌다.

김호의 수원과 조광래의 안양은 불꽃 튀는 맞대결로 K리그에 ‘더비’라는 말을 낳았다. 둘은 덕장이나 용장보다는 지장(智將)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늘 새로운 전술을 구상했고 짜임새 있는 축구로 팬에게 큰 재미를 선사했다. 또 한국축구의 구태와 병폐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거침없이 낸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지도자 생활을 마친 뒤 똑같이 시민구단 대표이사도 맡았다.

   
▲ 조광래(왼쪽) 대구 대표가 지난 9일 새 홈구장 개장경기에 앞서 안드레 감독과 활짝 웃고 있다. / 사진제공=프로축구연맹

K리그2 대전 시티즌의 김호 대표는 지난 11일 건강을 이유로 사퇴했다. 김 전 대표는 재임 중 비상식적인 구단 운영으로 구설에 자주 올랐다. 최근에는 구단이 신인선수 부정 선발 의혹에 휩싸였다. 이 사안은 경찰 수사 중이라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K리그1 대구FC의 조광래 대표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팀이 1부리그 승격에 이어 지난해 FA컵에서 우승했다. 올해는 국내 리그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선전 중이다. 조 대표는 얼마 전 개장한 축구전용구장(DGB대구은행파크) 건립의 주역으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한때는 콤비였고 한때는 맞수였던 두 사람, 그리고 닮은 점도 참 많은 두 사람의 오늘날 처지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똑똑한 선수, 똑똑한 지도자로 명성을 얻었지만 프로축구단 경영자로는 희비가 갈렸다. 소신과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조광래 대표에게 박수를 보내는 한편으로 축구팬과 지역사회의 지탄을 받으며 퇴임한 김호 전 대표의 모습을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최승진 기자 hug@footballjournal.co.kr

<저작권자 © 2013 축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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